인문학이란...

"우리 사회 빈곤계층의 자존감, 어디서 찾을 것인가"

[프레시안 / 권은정의 WHO] 노숙인 인문학 강좌 진행하는 임영인 신부

기사입력 2009-01-22 오전 10:03:35

 

 

우리는 정말 돈으로만 살아야 하는가? 그게 최고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그런데 노숙인 인문학 수업은 무엇인가? 누울 자리와 하루 끼니가 걱정인 그들에게 무슨 구름 잡는 소린가?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발 빠른 학생들은 인문학 교재 밑에 취업 준비서를 두고 본다는데.

 

성프란시스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시작하여 4년간 책임지고 끌어 온 임영인 신부를 만났다. 그에게 처음 시작한 때와 지금에 와서 달라진 게 뭐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필이면 우리는 주로 인문학 도서를 구비해 놓은 길담서원에서 만났다.

 

"제가 요즘엔 거짓말을 조금만 해요. 처음엔 많이 과장했지요. 인문학 하면 노숙인이 달라진다, 자활한다, 그렇게 말했었지요."

요즘 그는 배짱도 늘었다. 인문학 수업하면 진짜 노숙인이 자활해? 라고 누가 물으면, '당신이라면 어떨 것 같은가? 인문학 수업 1년이 삶을 아주 다르게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가? 노숙인들한테는 뭐 그리 주문이 많으냐? 우리가 하는 이 프로그램을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해 주면 좋겠다'고 되받아친다.

 

사람들이 그에게 던지는 질문도 달라졌단다.

"처음엔 그거 왜 해? 정말 의미가 있냐? 요즘은, '아직도 하세요?' 하고 물어요. 마치 한때 유행처럼 반짝였다가 사라지겠거니 싶었던 모양이지요. 하긴 나도 그랬으니까요."

노숙인들에게 인문학 수업을 받아보라고 권하는 게 쉬웠으랴. 내동댕이쳐진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시도'해본다는 것은 인생을 새로 시작하라는 무리한 요구였을 것이다.

"과연 이 양반들이 모일까 하는 걱정이 컸었지요. 그런데 4기 모집부터 좀 수월해졌어요. 이젠 뭐…"

 

그의 표정이 좀 느긋해진다. 올해 5기 신입생 모집을 학생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1기 때는 수업 신청하면 방값을 싸게 구해준다고 해서 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소문 듣고 오는 학생도 있고, 매스컴에서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영향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미 공부해본 이들한테 듣는 이야기가 제일이지 않겠느냐는 게 임신부의 말이다. 물론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따뜻해진 것도 도움이 된다.

 

오는 2월에 졸업하는 4기 졸업생 수는 전부 14명이다.

"매번 비슷하네요. 스물 서너 명 뽑는데 졸업률이 60%정도 되지요. 제 자신도 놀라요. 이들이 끝까지 해내는 것을 보면….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중간에 때려치우고 갔던 이들이 돌아온다는 거지요. 일자리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갔던 사람들이지요. 사실 이분들이 오래 일하는 게 힘들어요. 체력적인 면에서나 심리적인 면에서 그렇지요. 그런데 그 양반들이 돌아와서 다시 할 수 있느냐고 물어오는 거예요."

 

2기부터 그랬단다. 1기 때 그만둔 친구가 다시 하겠다고 그러더니 매 기수마다 그런 이들이 꼭 생겼다. 꼭 뽑아달라고, 마저 끝내고 싶다고.

"졸업 앞둔 친구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 정말 다들 얼굴빛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얼굴에 변화가 있다는 거지요. 우울한 얼굴에 삶의 생기가 돈다는 거, 전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노숙인 인문학 프로그램을 하는 데가 여러 곳 생겼다. 그렇게 되기까지 임 신부는 많이 쫓아다녔다. 성공회 사제이지만 아마 신학보다는 인문학을 더 많이 설교했을 것 같다. 그가 사제로 서품 받은 지 11년 된다. 지금 마흔 후반이니 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그는 사제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노동자와 빈민들 틈에서 살아왔다. '당연하게도' 그는 대학시절 열심히 운동을 했고 그리고 감옥에도 다녀왔다. 주로 경기 지역에서 긴 세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 해온 임신부는 우리 사회 제도의 변화를 간절히 원했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물질적인 기반이 좀 더 두터워지길 진심으로 고대했다.

 

그가 등을 바로 세워 앉으면서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좀 삐딱해서 그런 건데요. 언젠가부터 이런 결론을 내렸지요. 우리 사회의 빈곤계층이 그 상황을 벗어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절망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팔자소관이라면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 우리 스스로 여기서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자기 안에서의 변화를 찾아 나서자고 사람들을 다그쳤다. 자기의 삶, 풍요롭고 낙관적인 삶을 찾아낸다면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했다.

그 방법이 관계의 소통에서 나올 것인가 싶어 그 방면의 강의와 교육, 훈련을 시도했다. 다 같이 철학 공부도 해봤다. 근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동료 신부로부터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받고 무릎을 쳤다. 그리고 수원에서 서울로 발령받고 와 서울역에서 노숙인들 만났다.

 

처음에는 노숙인들에게 잠자리, 먹을 것 입을 것을 내주면 줄수록 임 신부는 허탈해졌다. 노숙인들 스스로 말하길 부지런하면 하루에 다섯 끼 얻어먹을 수 있다고 한다. 옷도 얻어 입는데 어려움이 없다. '궁색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데, 왜 그들의 삶은 내동댕이쳐진 것 같을까? 왜 맨날 그 자리에 맴돌고 있는 것일까?

 

"자존감이 빠져 있었지요. 이건 자존심도 아니고, 자아존중감 그것과도 다른 건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 그럴 자격도 있고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눌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자기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 자존감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만 회복시킬 수 있다면! 그런 강렬한 바람이 인문학 수업을 시작하게 만든 근본정신이다.

 

임 신부는 노숙인들의 인문학 수업을 지켜보면서 크게 감동받았다.

"이 양반들은 몸으로 배운다는 느낌을 받아요. 가르치는 교수 분들도 그렇게 말씀들 하시지요. 대학생들은 별로 질문이 없는데 이 양반들은 끊임없이 질문하지요. 답을 얻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지난 학기 강의의 키워드는 '스티그마'(오명)였어요. 일반인들은 그 단어의 개념을 소화하면 끝인데 이들은 자기 삶에서 해석해내려고 하지요. 자기 상처 안으로 찾아 들어가요. 한 학생은 얼굴에 아주 큰 흉터가 있는데 그 때문에 취직도 안돼요. 그 학생이 내면의 흉터까지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이 참… 학생들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릅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본격적인 인문학 강의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그가 말한다.

 

"자긍심이 대단해요. 이 양반들은 대부분 공부를 제대로 못해봤지요. 지적인 욕구나 갈증이 아주 커요. 대학교수들이 참여한다니 잘 먹혀들어가요. 평생 엄두도 못내 봤던 일이지요. 기본적으로 인간관계에 불신이 많아요. 생존적인 관계 맺기에만 익숙했는데 물적인 것을 넘어선 인간관계를 가지며 신뢰가 생겼어요. 비로소 자기 자신과 주변에 대한 질문들이 오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가르치러 왔던 교수 중에는 깨진 이들도 많단다. 동양철학 강의를 하는 교수가 반시간이 넘도록 설명만 하자 한 학생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서 말했단다. 교수님, 도대체 그게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렇게 길게 이야기합니까? 한마디로 해주세요! 진짜 공부라면 내 삶에 변화와 깨달음을 가져다 줄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을 이야기 해 달라고 부르짖었단다.

 

임 신부는 절규하듯 외치는 학생들의 그런 태도야말로 그들이 인문학 공부에 거는 희망의 표시라고 단언한다.

 

임 신부는 요즘 궁리하는 게 있다. 어떻게 하면 강의 공간을 밖으로 끄집어 낼 것인가? 지금 공부하는 곳이 노숙인들의 생활센터인지라 그 틀을 벗어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외부로 나와서 진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노숙인들을 일반인으로 복원시키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언젠가 덴마크에서 교수들과 교육인적자원부 관료들이 방문했을 때였다. 선진국인 귀하의 나라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은 없지요? 라고 물었더니,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대답하더란다. 왜냐하면,

"노숙인이든 빈곤계층이든 공부하기를 원하면 대학이나 사회교육기관, 어디든 신청하면 된다, 정부에서 돈을 대주니까. , 그렇구나 싶더군요. 노숙인을 따로 모아서 인문학을 공부시킬게 아니고 일반인들의 수업에 같이 배울 수 있게 하면 되는 것이구나! 노숙인을 모아놓으니까 그 틀을 벗어나기 당연히 힘들죠. 이들의 욕구와 일반인들 욕구가 다를 리가 있습니까?"

 

임 신부는 길가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함으로써 평범한 한 시민으로서 살았던 기억을 되살려내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배려한다면 인문학의 공간을 나눠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인문학의 위기를 맞았다고 하는데 대학 강의를 오픈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자기존재에 대한 분명한 질문을 가진 사람들한테 수업을 오픈한다면 인문학이 얼마나 더 풍성해질텐데. 근데 교수님들이 겁이 좀 나시겠지요? 하하하…."

 

임 신부는 이 프로그램 수업 중에 자기 수업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 제목이야 뭐든 이 강좌에 들어설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자칭 무신론자인 클레멘트 코스의 창시자인 얼 쇼리스도 지난번 한국 방문 때 임신부에게 영성 프로그램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권하기도 했다.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일은 바로 자신을 성찰하는 것, 그 성찰을 도와주는 게 바로 신앙생활, 그게 출발점이긴 하지요. 그렇지만 그러니 믿으라!고 하라고요? 노숙 현장에서 그렇게 말하다간 돌팔매 맞을걸요."

 

그는 잘라 말한다.

 

"길거리에서 밥 주는 것, 그리고 하느님 믿으라는 것, 그거 참혹해요. 밥하고 예배하고 거래하는 것 같아서, 밥 퍼주는 목사님들이 저더러 설교도 하고 그러라는데 저는 못한다고 그러지요. 한 끼 밥 먹기 위해 애절한 사람들이예요. 길바닥에 쭈그리고 오가는 사람들 흘낏거리는데 설교가 통하겠느냐고요? 노숙업계 그 방식 아닌 것 같아요. 옷 나눠 주면서 등짝에 글자는 왜 새겨 놓는지 몰라요. 그거 입으면 노숙인인 거 다 아는데 누가 입겠어요? 천벌이나 나눠줬다고 하는데 다음날 그 옷 입는 사람 없어요. 그 사람 입장을 존중해줘야 그게 제대로 된 선교이지 내 방식으로 베푸는 게 그게 사랑일까요?"

 

임 신부는 노숙인들에게 대놓고 '예수 믿고 구원 얻으라'는 말을 못하지만 믿는 구석은 있다. 신학을 뒤집으면 인간학, 인문학이라는 말이다. 신학은 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게 아니고 인간이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니 인문학과 그 맥이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문학 하다보면 저절로 신학 할 것 같다는 말이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되는 거 아니니, 둘러가도 결국 가면 되는 길 아니냐, 그 길로 갈 텐데 하는 믿음이다.

 

사람들이 노숙인 전문인 임신부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노숙인들이 구걸할 적에 돈을 줘야 하나? 돈 주면 술 퍼마신다는데?'

"제가 그러지요. 주고 싶으면 주고 싫으면 말아라. 물론 열에 아홉은 노숙인들 그 돈으로 술 마시고 스크린 경마 갈 겁니다. 희망이 없으니까. 그들이 돈을 구걸하는 것은 연민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요.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동정하라고 가르치지요? 세상이 좀 어리숙한 구석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한 알콜 중독자인 노숙인이 기초생활 수급자 자격이 되어서 그렇게 만들었는데 수급자 된 지 두 달 만에 죽었어요. 그 돈으로 전부 술을 마셨으니까요. 수급자로 만들지 말았어야 할까요? 난 그래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고 봐요. 우리는 돈 한 푼 줄까 말까 그런 고민하지 말고, 연민을 넘어선 제도화, 그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세금 더 많이 내서 풍요롭게 지출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고민은 안 하잖아요?"

 

"다른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죄"라고 시몬느 베이유는 말했다. 나만 잘먹고 잘 살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라며 사는 사람들, 그들은 틀렸다. 공부해야 한다. 임신부는 그래서 노숙인들에게만 인문학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짚는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각자가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그동안 너무 많이 먹었어요! 짧은 시간 안에 밥을 너무 빨리 먹어서 식식거리는 것 같지 않아요?!"

그가 혼잣말처럼 크게 내뱉는다. 정말 그렇다.

 

덧붙임 : 이 원고를 쓰던 중 용산 철거민 강제 진압 뉴스를 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 참사에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철거민들은 삶의 터를 지킬 권리와 자신의 목숨을 맞바꿔야만 했다. 이 추운 겨울날 그들이 가야할 곳은 이 지상에 없었다.

 

/권은정 전문 인터뷰어,손문상 기자(사진)

by 로드첸코 | 2009/01/22 11:18 | 크리에이티브 | 트랙백 | 덧글(0)
발터 벤야민-일방통행로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의 '실수', 여성스러운 변덕이나 약점에만 연연해 하지 않는다. 어떠한 아름다움보다 그의 마음을 더욱더 오래, 더욱더 사정없이 붙잡는 것은 얼굴의 주름살, 기미, 낡은 옷, 그리고 기울어진 걸음걸이다. 우리는 이를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다. 어째서인가? 감정은 머리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이 맞는다면, 또한 창문, 구름, 나무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머릿속이 아니라 그것들을 본 장소에 깃들어 있다는 학설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자신을 벗어난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긴장과 환희를 느낀다. 감정은 여인의 광채에 눈이 부셔서 새떼처럼 푸드득거린다. 그리고 잎으로 가려진 나무의 우묵한 곳에 은신처를 찾는 새처럼 감정은 사랑하는 육체의 그늘진 주름살, 투박한 몸짓,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결점을 찾아 그 안에 숨어 들어가 안전하게 은신처 안에서 몸을 움츠린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랑의 떨림은 바로 거기, 결점이 되고 비난거리가 될 만한 것 안에 둥우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 사유 이미지>, 김영옥 외 옮김, 길

by 로드첸코 | 2008/11/12 13:21 | 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서영채-매니아, 욕망부정의 진정성

(...)

 

속물들의 세계가 안팎이 다른 세계라면 광인들의 세계는 투명한 세계이다. 안팎이 같으니 안의 모습을 바깥으로 꾸밀 필요가 없고, 밖을 의식하지 않으니 안으로 몰두할 수 있다. 안만으로 세상을 사는 인간들의 아름다움이야 구태여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진정한 매니아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바깥이 아니라 안이며, 그 내면의 진정성이자 깊이였다. 

매니아를 향한 동경과 열망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 일반의 추동력과 상반된다. 매니아를 향한 열망이 깊이와 관련되는 것인 데 반해 그 바깥 세계의 동력은 높이를 향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프로이트는 그의 문명론에서 현단계 인간의 문명을 가리켜 '보조기구를 장착한 신(prosthetic God)'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결과물로 무장한 인간은 말 그대로 위풍당당한 신의 모습이다.
고대 인류의 눈으로 현대인을 보라. 우리는 새보다 높이 하늘을 날고, 제우스의 벼락보다 강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어떤 물짐승보다 더 깊이 잠수한다.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잡아낸다. 그 많은 보조기구를 장착하고 등장한다면 우리가 그 어떤 신의 모습에서 뒤지겠는가. 

이와 같은 상승에의 욕망을 우리는 저 중세 신학자들과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어 에로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완성을 향한 열망이다. 그러나 인간의 에로스에 대한 추구는 고립된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유대와 단결 속에서 행해진다. 그 속에서 개인이란 나사못이나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하다. 프로이트는 바로 이와 같은 에로스의 힘이야말로 문명의 근본적인 동력이라고 했다.
인간은 스스로의 보존을 위해 다른 개체와 유대하고 그럼으로써 보다 큰 개체로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이 안에서 인간 활동의 근본적 동인인 두 가지 요소, 삶의 물질적 필요와 애정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킨다.  

... 

개체간의 유대란 필연적으로 유대 가능한 타자의 선택을 필요로 하며, 선택이란 어김없이 배제를 동반한다. 에로스가 강화될수록 배제하는 힘도 강화되기 마련이며, 결속력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배제하는 힘, 공동체 밖의 타자들을 억누르는 힘의 증대를 산출할 수밖에 없다. 곧 에로스의 강화는 폭력적인 힘의 강화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문명의 전개과정을 돌아볼 때 매우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문명은 자연력의 정복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간을 자연이라는 타자로부터 유리시킴으로써, 인간 내부의 자연인 야수성을 배제하고 길들임으로써, 그와 동시에 예의범절이라는 문명됨의 준칙을 내세움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던가. 외적 자연의 정복과 내적 자연의 억압이라는 이 두 가지 무기는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 보자면 파괴성의 다른 이름이다.
게다가 그러한 정복과 억압의 대상이 비단 자연에만 한정된 것이었던가. 타자는 한 공동체 바깥의 모든 것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때문에 다른 공동체와 개체도 마찬가지로 폭력성의 대상이 되는 타자일 수밖에 없었다

... 

우리시대 대중문화가 소유하고 있는 저 엄청난 위력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바벨탑의 정상에 서고자 하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매니아는 그 높이의 신화에 맞서는 깊이의 상징이라고, 에로스의 당당한 보무의 전열 앞에 놓여 있는 참호이며, 함정이라고, 그러므로 미정형의 부정적이고 유동적인 욕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매니아들은 결코 무리짓지 않는다. 그들은 균질화된 감각에 저항하는 자이며, 외부와 격리된 자기만의 심연 속에서 가치의 내면성 속으로 침잠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꾸미고 장식해야 하는 밖의 유대가 아니라 깊은 곳에서 서로 만나는 안의 유대이고, 문화적 민주주의의 양적 확산이 아니라 질적 고양이다. 독창성을 향한 열망이다.  

우리사회가 바벨탑을 향한 광기 어린 에로스로 미만해 있을 때, 타자에 대한 철저한 지배와 폭력, 정글의 논리라는 홉즈의 진단이 전일적인 것으로 관철되고 있을 때, 그리하여 문화의 영역에서조차 생산성과 유용성이라는 탑의 신화가 상업주의와 연합하여 지배적인 것으로 군림하고 있을 때, 매니아는 그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키고, 그 고립과 격절의 공간에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심연의 질서를 벼리어 내는 문화적 항체이다. 거대한 광기에 저항하는 작은 광기이다. 전체로부터 개체를 분리해내는 타나토스이되 자본제적 힘이라는 무차별적이고 가차없는 타나토스에 맞서는 작은, 그러나 어김없이 그 거인의 발목을 거는 타나토스이다.

 

영채,「매니아의 욕망부정의 진정성」, REVIEW
’94. 겨울, 창간호 (문예마당 刊)
 

by 로드첸코 | 2008/11/12 13:18 | 잡다한 생각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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